세상에 더 깊이 뿌리내리는 일

요즘은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한다고 느낀다.
특히 AI에 관한 소식을 보다 보면 마음이 어지럽다. 며칠 전까지 새롭다던 것이 금세 옛것이 되고, 하나를 알아갈 때쯤이면 또 다른 것이 나타난다. 가만히 있으면 뒤처질 것 같아 계속 들여다보지만, 많이 볼수록 오히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사람의 운명이란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이 어디로 가든 내가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다고 여겼다. 내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그것이 내 운명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적어도 나 하나의 일이라면 그랬다.
아이가 태어난 뒤에는 그렇게 생각하기 어려워졌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야 내가 그동안 세상에 꽤 가볍게 발을 딛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나 하나쯤은 한발 물러서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자 그럴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 아니라 아이가 오래 살아갈 곳이라고 생각하니, 세상은 갑자기 아주 가까운 곳이 되었다. 아이가 나와 세상 사이에 새로운 뿌리를 내린 것 같았다. 아이가 자라면서 그 뿌리도 함께 굵어지고 있다.
뿌리가 얕을 때는 강한 바람에 뽑혀 어디론가 날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뿌리가 굵어지면 바람이 불어도 그 자리에 남는다. 흔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쉽게 뽑히지 않는다.
요즘 나를 흔드는 바람 중 하나가 AI다.
AI가 무엇을 바꿀지, 아이가 자랄 때는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생각한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그때도 쓸모가 있을지 궁금하다. 예전 같으면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넘겼을 변화가 이제는 아이가 살아갈 세상의 일이 되었다.
그래서 무엇이든 알아야 할 것 같고, 하나라도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든다.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이 자꾸 나를 재촉한다. 하지만 쏟아지는 모든 소식을 따라가다 보면 정작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잊어버릴 때도 있다.
그럴 때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본다.
그러면 내가 모든 것을 미리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이 어떻게 달라질지 지금 다 알 수는 없다. 다만 변화가 올 때마다 외면하지 않고, 모르는 것은 그때그때 배우면서 아이 곁에 오래 서 있고 싶다.
세상은 여전히 빠르고 나는 자주 흔들린다. 그래도 전처럼 쉽게 휩쓸려 갈 것 같지는 않다. 아이가 내 뿌리를 굵게 만들었고, 그 뿌리가 흔들리는 나를 다시 붙들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