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손은 무거웠지만 마음에는 짐이 없었다
새벽에 여덟 달 된 아이가 울었다.
요즘은 밤에 깨는 일이 드물었다. 울음소리를 듣고 처음 든 생각은 오랜만에 깼네, 내일 괜찮으려나 하는 것이었다. 크게 짜증이 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잠이 끊긴 밤과 피곤할 다음 날이 함께 떠올랐다.
아이에게 가는 짧은 동안 최근 몇 주 동안 계속 생각해온 마음챙김 이야기가 떠올랐다. 엘렌 랭어는 모든 것이 변하고, 같은 것도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이 생각을 정보가 넘치는 상황에서 결정을 내리는 일에도, 사람들과 대화하며 내 생각이 달라지는 일에도 가져다 보았다. 그래도 주로 머리로 이해한 내용이었다. 그날은 아이 방으로 가는 몇 걸음 사이에 그 말이 생각났다.
상황의 의미는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다. 무엇을 알아차리고 어떤 맥락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같은 순간도 다르게 경험할 수 있다.
이 상황을 좋게 생각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다. 지금 떠오른 걱정 말고도 다른 관점이 있을 수 있다는 선택지가 생겼다. 그것만으로 마음이 거의 바로 편안해졌다.
서두르지 않고 아이를 안아 들었다. 아이는 제법 무거웠고 품에 안겨서도 한동안 계속 울었다. 울음을 빨리 멈춰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이가 울면 우는 대로 품에 안고 달랬다. 가까이에서 아이의 체온과 냄새가 느껴졌다. 이렇게 아이를 안아 달래는 일도 지금만 가능한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황을 다르게 볼 수 있다는 선택지가 먼저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그제야 이때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보였다.
아이는 그날 꽤 울었고 나는 다음 날 피곤했다. 관점이 달라졌다고 상황이 쉬워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아이에게 짜증이 나지는 않았다.
마음챙김이 다른 관점의 가능성을 알아차리는 일이라면, 실천적 지혜는 그 여유 안에서 지금 할 행동을 고르는 일에 가까울 것이다. 그날 내게 맞는 행동은 거창하지 않았다. 내일을 걱정하며 서두르지 않고, 우는 아이를 안아 돌보는 것이었다.
아이의 몸무게도 다음 날의 피곤함도 줄지 않았다. 두 손은 무거웠지만 마음에는 짐이 없었다.
참고:
- Zan Boag, “Akin to mindfulness”, New Philosopher, 2026년 6월 9일. https://www.newphilosopher.com/articles/akin-mindfulness/